시각, 후각, 촉각, 청각, 미각 다섯 가지 감각 중에서 가장 의존도가 높은 것은 무엇일까.그 중 시각 의존도가 전체 감각 중에서 85%, 청각이 약 10%, 나머지 3개의 감각이 5% 가량 된다고 한다.생각해보면 그렇다.뭔가를 감각하고 판단하고 확신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시각만큼 분명하다고 생각하는게 있을까.특히나 대상에 언어를 붙여야 할 경우 시각은 거의 절대적이다.뭔지 '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그러나 시각이 언제나 옳게 작동하는 걸까?물이 담긴 컵에 빨대를 꽂으면 빨대는 꺽여서 보인다.실제로 빨대가 꺽인 것이 아니다. 그렇게만 보일 뿐.물건을 한참 찾을 때는 안보이다가 어느 날 문득 찾던 곳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왜 그때는 못 봤을까.내가 본 것과 상대방이 본 것이 달라서 의견이 갈릴 때가 있다.서로가 자신이 본 것이 너무도 확실해서 잘못 봤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의견은 좁혀지지 않는다.나는 제대로 봤어 라고 하는 믿음과 실제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할지도 모른다.어쩌면 나는 늘 보던대로 내 방식대로만 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기획된 워크숍이다.매주 작업실 친구들과 이미지에 관련된 스터디를 하고 있다.사진을 찍어와서 느낌을 나누거나, 좋은 전시가 있다면 다같이 보고와서 소감을 나누거나,각자가 이미지를 소비하고 수용하는 방식과 해석하는 것을 나누는 스터디다.최근에는 구성원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워크숍을 기획해보고 있다.그 일환으로 감각 전이 워크숍을 기획하게 되었는데,시각 의존도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보다가 늘 보던 대로 보는 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느끼고 이미지화해볼 수는 없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그렇다면 사물을 보고 그리는 것 말고 만져보고 그리는 것을 해보자!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이지만, 좀처럼 주의를 기울여서 보지 않았던(사실 대부분이 그렇다) 물건을 준비했다.이 과정이 제일 어려웠다. ㅠ 뭘 준비하나...ㅠ안보이도록 가방에 하나씩 넣어 나눠주고, 다들 충분히 만진 후에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프로세스는 간단하지만, 생각보다 어렵다.만지는 순간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면, 실제 손의 감각을 느끼기보다 머리 속의 이미지를 재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만져보는 임씨 그림을 그린 후에 물건을 꺼내서 비교해봤다.촉각으로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먼저 어려운 점은 어디서부터 그리지? 라는 것.눈으로 볼 때는 원근법이 생기는데, 촉각은 그게 없으니까 약간 막막해지는 지점을 만난다.그러나 원근법이라고 하는 것도 르네상스 시대에 생겨난 개념이니, 그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처럼 사물을 봤을지는 모를 일이다.또한 물건의 위와 아래와 옆이 다 다르고, 어떤 부분은 매끄럽고 어떤 부분은 텁텁하고, 촉각은 다른데 이미지로는 표현해낼 길이 없었다. 실핀 뭉치 중에서 작은 실핀은 놓치고 말았다며 아쉬워했던 정씨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정씨는 거의 실물 크기와 똑같이 재현했다. 손가락 마디로 크기를 가늠했다나.나는 그런 것은 생각도 못했네... 실밥도 표현한 우씨. 그러나 눈동장는 빼먹었다 만지는 내내 이게 뭐냐 이게 뭐냐를 연발했던 우씨. ㅎㅎ꺼내보고나니 갈매기 인형의 촉감이 있었는데 모르고 만질 때는 그게 느껴지진 않았단다.그리고 눈동자를 빼먹어버리고 ㅎ 곤충같은 느낌으로 그려진 은씨의 사물 책상 위에 뒹굴고 있던 나무 괄사를 넣어줬다.촉감이 나무인지는 알겠으나, 도대체 뭔지는 몰랐다고.뭔가 곤충 느낌으로 그려진 괄사 ㅎ 가장 난이도가 높은 물건을 받은 임씨 수도꼭지와 세탁기를 연결하는 연결부품을 준비했었다.이게 제일 어렵겠다 하고 준비했는데, 임씨는 만지자마자 뭔지 바로 알았단다.그리고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실제 만지는 촉각을 그리기보다 알고 있던 이미지를 그리게 되었다고.그래서 두께감도 엄청 얇아졌고, 물건에 붙어있던 테이프같은 것도 생략해버렸다. 내가 그렸던 미닫이 도어 안전 스토퍼 이 워크숍은 물건을 준비한 사람이 가장 어렵다.만지자 마자 바로 뭔지 알기 때문에 알고 있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충분히 만질수록 위, 아래, 옆이 다 다르고, 촉각도 다른데, 촉각의 다름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기호처럼 텁텁한 부분은 뭉글뭉글하게 연필을 굴리고, 매끈한 부분은 빗금으로 처리해버렸다.또한 위와 아래, 앞 뒤가 전혀 모양이 달라서 저 다른 부분들을 취합해서 하나의 물건으로 재정립하는 의식의 과정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었다.한바탕 촉각과 이미지 사이의 간격을 느껴보면서 워크숍은 마무리.다음에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