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언제나 고민이 되는 것은 공예와 실용 그 중간의 어디쯤이다. 특히나 실이라고 하는 소재는 소재 자체가 갖는 유동성이 사용에 따라서는 자유로울 수 있지만, 동시에 내구성의 측면에서는 기성의 제품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어려움도 있다. 선을 면으로 만드는 작업은 위빙이나 뜨개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 그 두 가지 모두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형태가 변형되는 멋은 있지만,구조적으로 탄탄하게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 보통 그래서 탄탄한 가방은 가죽을 이용하는걸까...그러나 가죽 가방의 아무래도 무거운 분위기는 벗어나면서 구조적으로 탄탄한 가방을 만들고 싶었다. 선을 면으로 만드는 것이 위빙과 뜨개만 있을까.고정된 생각을 뒤로 물려보기로 했다. 2.둥근 형태가 갖는 편안함.그 중에서도 달항아리는 최고다. 뭐든 다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넉넉함. 다 품어주고 수용해줄 것만 같은 여성성을 느낀다. 그리고 기계로 찍어낸 듯 정확한 원이 아닌 어딘가 조금 찌그러지고 균형이 약간 틀어진 그 느낌이 숨 쉴 공간을 내어준다. 그 중에서도 매료되었던 것이 둥글 납작한 형태의 항아리였다. 어디든 쏙쏙 잘 들어가 자리 잡을 것 같은 느낌이 사방으로 둥근 달항아리보다 소박하게 다가왔다.그 형태 자체로 매료되어버렸다. 도자기처럼 하나의 소재로 전체적인 통일감을 갖도록 하자.눈에 띄는 부자재같은 군더더기를 모두 빼고 구조와 형태에 집중해보자.이것이 가방 만들기의 첫 시도였다. 3.그렇게 만들어진 첫 번째 샘플의 첫인상에서 동양적이라기보다 가본 적도 없는 지중해 휴양지의 분위기를 먼저 느꼈다. 앰니지아 클럽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비자를 배경으로 앰니지아 클럽에 DJ를 하러 온 독일 청년과 자신이 독일인인 것을 숨기고 살고 있는 중년 여성 사이에 일어나는 유대 관계와역사인식에 대한 영화였는데, 영화 자체도 물론 좋았지만, 주인공 여성이 살던 지중해 해변의 집이 너무도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다. 그 이미지는 꽤나 깊게 각인되어서 이후에 취향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많은 부분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겠지 싶다. 마음이 지치면 알게 모르게 휴식처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나에게 앰니지아 클럽의 지중해 집이 그런 건 아니었을까...만든다는 것은 이런 부분이 특히 재밌다. 의도가 반 무작위가 반이다. 작위와 무작위가 뒤엉켜서 스스로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자신의 상태와 그 외의 부분도 함께 형태로써 드러나는 것. 4. 내구성을 위해 몇 번의 수정 작업을 거치면서 샘플링 작업을 했다. 여기저기 메고 돌아다니고, 험하게도 써보고.스타일링도 고민하고.휴양지에 갈 때 생각나는 가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원형의 가방은 생각보다 잔잔하게 모든 옷에 잘 매치되었다. 5.판데로백의 형태를 기본으로 컬러 변화나 다른 변형의 형태로 앞으로도 하나씩 선보일 예정입니다. 관심과 사랑을 주세용.